October님 ccoli.co/@abcdefg11

♥/로로 2022. 11. 5.

 


어디에도 가지 말고 곁에 있거라.

 

  눈이 아릴 정도의 하양 저편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굴뚝이 보였다. 설원의 끝이었다. 나란히 걷는 동안 재클린 로즈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뱉었고 나는 시시껄렁하게 어울렸다. 눈 언덕의 아래, 근방에 어떤 나무도 풀 한 포기도 없어 덩그라니 서 있는 오두막은 과연 서면에 쓰여진 대로 마법사의 집 같았다. 나와 재클린은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도 늘리지도 않고 천천히 오두막을 향해 걸었다. 한 속도로.


  그것이 어색해질 즈음 연 오두막의 내부는 한결 생각을 환기시켜 줬다. 내가 내부를 둘러볼 동안 재클린은 “호오.” 하고 흥미로운 듯 짧은 감탄사를 내뱉고는 종이의 다섯 번째 줄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이행했다. 창문 아래, 협탁 위 세 개의 촛불이 빨강, 하양, 노랑 순으로 불이 붙었고 재클린은 불들이 꺼지지 않도록 손등으로 외풍을 가늠하며 심지 위 조그만 불꽃을 바라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 내부 파악을 마쳤다고 판단된 뒤 움직였다.


  재클린은 본디 저런 인물인데 가끔 기묘하게 군다니까, 짧은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그는 말이 많다. 나또한 언젠가 내 말로 인해 고꾸라질 거라 한소리 들은 인물이지만 재클린의 말 많음은 나와 결이 달랐다. 그는 사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그래서 손대볼 수 없으며 감각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두려워할 이유 없는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눈을 감으면 된다. 손댈 수 없다면 숨을 들이마시면 된다. 생각이 멈추지 않고 숨처럼 몸 안에서 돌게 하면 된다. 돌파구는 반드시 있다. 돌파구 없는 터널이란 선대 인간들이 모두 거쳐냈으며 우리 또한 마찬가지로 거치고 있는 개념이다. 그래서 나는 재클린의 어떤 행동들—어쩌면 과반수일지도 모른다.—을 이해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현시점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자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은 사람과 빚는 그러한 간극, 기묘함은 분명 유쾌한 종류는 아니다.


“이끼 상태는 어때?”
“나쁘지 않아. 오히려 훌륭한 수준이야. 이 장소에서 늪난이끼를 이렇게까지 키워내는 비결이 궁금하네.”
“잘됐네. 내쪽도 끝. 약초만 두고 나가면 될 것 같다.”
“그래.”


  소지품에서 부탁받은 약초 다발을 꺼냈다. 손바닥만한 마른 풀들은 면과 면을 거치며 끝이나 중앙 일부분이 바스라질 법도 했는데 결코 손상되는 일 없이 형태를 유지했다. 말린 약초가 아니라 공작깃으로 만든 부채인 것만 같았다. 재클린은 약초 다발을 받아들고자 손을 내밀었지만 내가 거절하며 직접 지정받은 위치로 움직였다. 이 집의 구석구석을 봐보고 싶었다. 재클린은 별 말 없이 어깨만 으쓱하곤 한가로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제는 또 말이 없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상황에서 방해받는 걸 원치 않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갭. 아, 역시 위화감이 든다.

  겨울로 시선을 던지며 멍하니 입이 살짝 벌려지는 걸 방치한다.


  나는 재클린이 가끔 재클린답게 굴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걸 신경써본 적은 없다. 적어도 내 인지 속에서는 그렇다. 오히려 재클린이 재클린 로즈 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사양이다. 그런데 함께 눈밭을 걸으며, 재클린이 나에게 ‘발자국을’ 이라고 시작되는 말을 뱉은 이후로, 아니, 그 이전부터 어떤 때를 기점으로 나는 재클린의 어떤 것들이 종종 또는 자주 신경쓰였고 그 이유를 탐구하기도 했다.
  답이야 찾아냈다. 찾아냈다 한들 그게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낯선 곳에 와 한없는 하양을 바라보다 어떤 바보 같은 언행을, 설원과 이 공간 안에서 연이어 목격하니 비로소—혹은 새삼스레— 무언가를 깨닫는다.


  가끔이라면 괜찮아.
  아니, 정확히는….


“야.”
“엉?”
“…이리 와 봐.”
“왜?”


  의문문을 던지면서도 재클린은 순순히 다가온다. 커다란 키의 상체가 나를 향해 살짝 구부려진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눈 밖에 없는 설원인데 분홍빛 사막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나.
  누군가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을 묻는다면 나는 ‘일렁임’이라고 답하겠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됐어.”
“오, 그래? 뭔데? 늪난이끼의 비밀?”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럼??”
“너에 대한 거야.”
“나??”


  한숨 내쉴 틈도 없이 피식거리는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오고, 나는 충동적으로 재클린의 손목을 끌어당긴다. 재클린은 순순히 끌려진다. 그리고 지근거리에서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본다. 나에게 일렁임을 준 건 자기 쪽이 먼저면서.


“난 어떤 바보가 바보짓을 하는 게 별로야. 썩 걔 답지 않거든. 근데 가끔이라면 괜찮아.”


  재클린의 눈이 깜빡거린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뱉는다.


“그런 걸 두고 세상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하는 거겠지. 나는 다른 단어를 붙이고 싶지만.”
“……어떤 단어?”
“비밀이야.”


  손을 놓고, 나는 약초 다발을 두러 홱 몸을 돌린다. 내 두 눈은 온전히 내 얼굴 위에 붙어있는데 등 뒤에서도 상대가 어처구니 없어하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약초를 두며 조금 웃고 만다.
  분명히 나는 재클린과 다르다. 나는 보이지 않으면 눈을 감는다. 만질 수 없다면 가만히 숨을 들이마신다. 생각이 돌도록. 돌다가 닿도록.
  파훼 대신 연결을 택할 기묘함들을 향해.

 

어디에도_가지_말고_곁에_있거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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